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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메리아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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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글은 이 링크에서 모셔온 글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유치환님의 "행복" 이라는 시에 저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네요 ^^ https://m.cafe.daum.net/whgdmstkfkawnd/8xYy/5414?q=%EC%9C%A0%EC%B9%98%ED%99%98+%ED%96%89%EB%B3%B5& 유치환 시인의 시 '행복'은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편지에 적어 봤을 정도로 정말 유명한 시 아닐까싶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니보다 행복하나리라"로 시작하는 첫구절은 이 시를 모두 다 외우지는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터.. 당시 유치환 시인은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고 이영도 시인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혼자의 몸이었다 한다 이영도 시인이 통영의 교사로 일하게 되었을때 그녀를 처음 보게된 청마는 이영도 여사를 사모하게 되었고 그날부터 20년간 약 1,500여통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유치환 시인의 행복은 그때 이영도 시인에게 보낸 편지에 수록된 내용. . . . 청마의 끈질긴 구애에 이영도 시인 역시 마음을 살짝 열게되는데, 그걸 표현한 시가 바로 이영도 시인의 '무제'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유치환 시인의 갑작스런 사고로 끝이 난다. 유치환님께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때 저녁 귀갓길에 교통사고 죽고 되게 그가 이영도 시인에게 보낸 20년간의 편지들은 6.25 전쟁때 일부 소실되고 남은 약 500 여통의 편지를 모아 펴낸 시집이 바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라고.. 당시 작품의 저작료는 이영도 시인이 받게 되었으며 이영도는 수익금을 모두 우리나라 시 문학 발전을 위해 기탁하였다고 한다 유치환 시인과 여류시인 이영도의 사랑이 당시 시대상으로 보면 축복 받을 수 없는 사랑 즉 불륜이었으나 그들이 보여준 사랑에 대한 진중한 자세만은 아름다운 글귀로 남아 오늘날까지 널리 회자 되고 있으니 이들의 사랑은 비로소 완성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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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4

    유저 프로필
    준짱짱짱

    그런 깊은 사연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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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저 프로필
    브랜든허

    와....

    12
    유저 프로필
    MUSE(뮤즈)

    👍👍 유치환의 깃발 행복 청마는달린다

    21
    유저 프로필
    박충일

    😃

    11
    유저 프로필
    파랑새들

    손편지를 써봐야겠습니다

    21
    유저 프로필
    요정별

    👍👍👍

    01
    유저 프로필
    오이공주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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