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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길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의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소로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개설하여 차량통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차량 통행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피난길로 이용되기도 하였던 이 길은 1968년1.21사태(무장공비침투사건, 이하 김신조 사건) 이후 1969년부터 국가안보 및 수도 서울 방어를 목적으로 2009년 6월까지 민간인 출입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1.21 김신조 사건은 단순한 침투 사건을 넘어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이후 다방면에 걸쳐 변화를 야기했습니다. 인왕산의 일반인 출입이 전면 금지되었고, 김신조 무장공비의 진입 루트인 북대문(숙정문)이 폐쇄 되었다가 2006년 4월에 민간에 개방되었죠. 우이령 도로 또한 김신조 무장공비들의 루트였기 때문에 이때에 폐쇄되었다가 2009년 7월 56년만에 개방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주민등록번호의 탄생 계기가 되기도 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의 주민번호가 1번, 육영수 여사가 2번이었습니다. 군대를 가는 한국 남성들에게 남긴 것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예비군과 5분대기조 그리고 육군3사관학교가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창설되었다는 것이며 게다가 이 일로 현역병들은 육군/해병대는 6개월(36개월), 해군/공군은 3개월(39개월)씩 복무기간이 연장되었고 유격훈련도 이때에 생겼으며 교련실습을 통한 안보교육이 강화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김신조 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로 보복을 위해 창설된 부대가 바로 684부대, 실미도 부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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