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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이 사는 집 앞을 지나며 나는 문득 그가 실향민 가족이리라 생각했다. 밑도 끝도 없는 짐작이었지만 신통하게도 사실이었다. 6.25 전쟁통에 무수한 북한 난민이 고향을 등져야 했다. 집도 일터도 없이 무작정 남하한 그들은 남한 각처에서 순전히 북청 물장수에 버금가는 억척스러움으로 낯설고 물선 땅에서 새 삶을 이뤄냈을 것이다. 나무위키는 전인권 아버지가 북청 출신임을 밝히고 있는데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2018년 SBS ‘집사부일체’에서 전인권은 출생 때부터 63년 넘게 살아온 집을 소개하면서 집안 내력을 투박하게 소개했다. “우리 집이 아주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한학자셨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사하며 돈을 버셨지. 살 곳이 마땅치 않아서 (산속으로) 올라온 겁니다.” 세상에 알려지다시피 전인권은 종종 대마초와 약물에 의지했고, 그 때문에 교도소를 들락거려야 했다. 그사이 아내가 집을 나갔고, 상심한 전인권은 대문 앞에 무성히 자란 잡초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만든 가사가 아내가 떠날 때 베지 않은 대문 앞 잡초들이에요.” 전인권은 특유의 어눌한 목소리로 그때를 이어간다. “(잡초를) 이젠 베도 됩니다. 가사를 썼으니 괜찮아요.” 아내가 돌아왔고, 대마초와 약물은 물론 술도 끊었다고 한다. 전인권의 집 이야기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듣는 나에겐 그닥 유쾌하지 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요즘 고등학교 동창 같은 옛 친구들을 만나면, 그럴 나이라선지, 숨겨온 말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한다. 우리 고향은 원래 평양이야. 우리 아버지는 만주에 사시다 징용당하셨다더라. 우리 어머니는 나가사키에서 원폭을 당했는데,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였대. 우리나라처럼 슬픈 근대사를 겪은 나라가 어디 있겠니. 우리가 아무리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해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거야, 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면 너무 진부할까? https://youtu.be/OXfr_tDr-DI?si=plLIVD8vwnmnMVBf


댓글 1
늘 닫혀 있던 전인권 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집앞에 우체통이 보였다. 2023년인가 우연히 삼청동 언덕을 지나다 본 전인권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