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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 작가님에 대해 정리된 내용이있어 카림님 정리해주신 내용에 덧붙여봅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 ⛰️ 1. 출생과 청년기: 아방가르드의 시작 *출생: 1916년 경북 울진의 유복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남. 산, 강, 바다가 어우러진 울진의 자연은 그의 평생 예술 테마인 '산'의 뿌리가 됨. *성격: 매우 똑똑하고 강직하며 '쿨한' 성격. 일제강점기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 재학 시절, 일본인 교사의 부당한 요구(학생 감시 등)에 저항하다 자퇴함. *일본 유학: 이중섭과 동갑내기로 일본 문화학원에서 함께 공부함. 당시 가장 전위적인 두 흐름 중 이중섭이 구상적 표현주의에 가까웠다면, 유영국은 처음부터 기하학적 추상에 몰두함. '자유 미술가 협회'를 통해 김환기 등과 교류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문을 열음. *초기 작업: 캔버스 대신 베니아판을 깎고 붙여 조형미를 살린 부조 작품 등을 제작함. "추상은 말이 없어서 좋다"며 서사나 감정의 과잉을 배제한 엄격한 조형 세계를 구축함. 🍶 2. 잃어버린 10년: 생활인이자 화가의 자존심 *해방 전후: 1943년 귀국 후 10년간 작품 관련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생업에 집중함. 생계를 위해 고향에서 고기잡이 배를 타고 양조장(망향 소주)을 운영함. *사업 수완: "그림을 잘 그리려면 수학을 잘해야 한다"며 사업에서도 1등을 할 만큼 탁월한 수완을 발휘함. *츤데레 면모: 어려운 시기에도 피난 내려온 이중섭을 찾으러 다니며 도움을 주려 노력했고, 후배 화가들에게 술과 밥을 아낌없이 사는 든든한 선배였음. *화가로의 복귀: 1955년, 경제적 기반을 닦은 후 "이제 화가가 되겠다"며 온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상경, 40세의 나이에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함. 🎨 3. 예술의 절정기: 자연과 추상의 만남 *산의 미학: 1960년대부터 독보적인 스타일이 완성됨.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에서 시작해 점차 '자연(산)'으로 회귀함. 2m가 넘는 대작들을 통해 산의 에너지와 사계절의 빛을 표현함. *색채의 마술사: 원색(빨강, 파랑, 노랑 등)을 과감하게 사용하면서도 깊이감을 잃지 않음. 겹겹이 쌓아 올린 색층은 서양의 마크 로스코에 비견될 만큼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냄. --댓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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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자기관리: 칸트처럼 정해진 시간에 작업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함. 서울대, 홍익대 교수직을 제안받았으나 학내 정치나 구속받는 환경이 맞지 않고, 자유로운 창작 시간 확보를 위해 금방 그만두고 오직 작업에만 전념함. 💊 4. 말년의 투병과 재평가 *사투 속의 창작: 1977년 심장박동기 수술(한국 3호)을 시작으로 8번의 뇌출혈과 수십 번의 입원을 반복함. 육체적 한계 속에서 후기 작품은 점차 부드럽고 따뜻한 곡선, 평온한 자연의 모습으로 변화함. *미래를 내다본 화가: "살아있을 땐 절대로 안 팔린다"고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의 그림은 1975년에야 처음으로 팔림. 하지만 그는 안 팔리는 시대를 살았기에 오히려 구속되지 않고 가장 자유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고백함. *이병철 회장과의 인연: 그의 첫 고객 중 한 명은 삼성 이병철 회장이었으며, 이후 이건희 회장 역시 그의 작품을 매우 아껴 대거 소장함(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됨). ✨ "사람은 자기 세대를 살다가 가는 것이다. 살면서 나는 나의 작품을 나 나름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다. 각자가 그렇게 자기의 일을 하면 된다." - 유영국 -
글을 보니 꼭 직관 해야겠네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