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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Gallery Boris 8월12일 수요일 루치오 폰타나는 1899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루이지 폰타나는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였고 어머니 루시아 보티니는 아르헨티나 출신 배우였습니다. 어린 시절 이탈리아로 보내져 교육받았으며, 이후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아버지의 조각 작업을 도왔습니다. 1920년대 후반 밀라노로 돌아온 그는 브레라 미술아카데미에서 조각을 공부했습니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조각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추상과 실험적인 작업으로 이동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추상조각과 도예를 실험했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다시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했습니다. 19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발표한 《백색 선언 Manifesto Blanco》은 이후 그의 예술에서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여기에서는 회화와 조각이라는 기존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색·소리·움직임·공간·시간을 통합하는 새로운 예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1947년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폰타나는 공간주의(Spazialismo)를 본격적으로 전개합니다. 그는 더 이상 화면 속에 공간을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공간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ㅡ 학력 폰타나는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아카데미(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에서 조각가 아돌포 윌트에게 수학했습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전통적인 조각교육을 받았습니다. 즉 기본적인 조형능력이 부족해서 전통을 파괴한 것이 아닙니다. 전통을 충분히 이해한 뒤 그것만으로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표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20세기는 비행기와 자동차,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폰타나는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는 예술 역시 새로운 공간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작가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는데 표현방법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작가는 자신의 시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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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주요경력 • 1920년대 후반 브레라 미술아카데미에서 조각을 공부했습니다. • 1930년대 이탈리아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며 조각과 도예를 실험했습니다. • 19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백색 선언》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1947년 밀라노에서 공간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습니다. • 1949년 캔버스에 구멍을 뚫는 《Buchi》 연작을 시작했습니다. • 1949년부터 빛과 공간을 활용한 Ambiente spaziale, 즉 공간환경 작업을 실험했습니다. • 1958년경부터 캔버스를 칼로 절개한 대표적인 《Tagli》 연작을 본격적으로 제작했습니다. • 베니스 비엔날레와 여러 국제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전후 유럽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흰색 절개 작품들을 하나의 환경으로 구성한 전시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ㅡ 미술학풍 폰타나의 예술을 단순히 ‘캔버스를 찢은 그림’이라고 설명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그에게 절개는 목적이 아니라 공간을 발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작업에서 네 가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첫째, 평면의 파괴입니다. 전통 회화는 2차원의 화면 안에 3차원 공간을 그립니다. 원근법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폰타나는 생각했습니다. 왜 공간을 그려야 하는가. 캔버스에 실제 구멍을 만들면 그 뒤에 진짜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가. 이것이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입니다. 둘째, 실제 빛입니다. 캔버스가 찢어지면 빛이 그 틈으로 들어갑니다. 관객의 위치와 전시장의 조명이 달라지면 절개 부분의 어둠과 그림자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작품에는 실제 시간과 환경이 개입합니다. 셋째, 행위입니다. 칼로 한 번 긋는 행위는 매우 짧습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긋는 것이 아닙니다. 절개의 길이와 위치, 간격을 결정하고 화면을 준비한 뒤 한 번의 동작으로 완성합니다. 그래서 절개에는 작가의 신체와 시간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넷째, 최소한의 형태입니다. 색 하나. 화면 하나. 선 하나. 그러나 그 하나가 회화와 조각, 공간의 경계를 동시에 질문합니다. 이것이 단순함과 빈약함의 차이입니다. ㅡ 대표작 · 주요평가 《Concetto spaziale, Buchi》 연작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된 ‘구멍’ 연작입니다. 폰타나는 캔버스나 종이에 작은 구멍을 반복해서 뚫었습니다. 그 순간 평면은 실제 깊이를 갖게 됩니다. 점처럼 보이는 구멍 하나가 화면 뒤의 공간과 연결됩니다. 《Concetto spaziale, Attese》 연작 폰타나를 대표하는 절개 회화입니다. 단색으로 칠한 캔버스에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긴 칼자국을 냈습니다. ‘Attese’는 이탈리아어로 ‘기다림들’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제목은 작품을 단순한 파괴 행위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로 읽게 합니다. 《Ambiente spaziale a luce nera》, 1949 검은빛과 공간을 활용한 초기 설치작업입니다. 관객이 그림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낸 환경 속으로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이후 설치미술과 몰입형 공간작업을 예견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La Fine di Dio》 연작, 1963~1964 달걀처럼 타원형의 대형 캔버스에 구멍과 절개를 반복한 작품군입니다. 제목은 ‘신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우주와 무한, 탄생과 종말을 하나의 형태 안에서 다룬 후기 대표작입니다. 폰타나의 중요성은 특정한 형태를 발명한 것만이 아닙니다. 회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꾸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절개 이후 캔버스는 더 이상 이미지를 담는 평평한 지지체만으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ㅡ 특이사항 폰타나의 절개 작품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현대미술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칼로 캔버스를 자르는 기술이 아닙니다. 누구나 캔버스를 자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그 행위를 회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만들었는가입니다. 그리고 한 번의 절개가 나오기까지 폰타나는 수십 년 동안 조각과 도예, 추상미술, 공간과 빛을 연구했습니다. 단순한 결과 뒤에 긴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평가할 때 결과물의 제작 난이도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작품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고 미술의 기존 문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까지 보아야 합니다. ㅡ 이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 오늘날 AI는 새로운 이미지를 무한히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더 새로운 이미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폰타나는 정반대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미지를 하나 더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미지가 존재하는 바탕 자체를 질문했습니다. 이것이 AI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I가 이미지 제작 능력을 빠르게 확장할수록 인간 작가는 AI보다 더 화려한 이미지를 만드는 경쟁에만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질문해야 합니다. 왜 캔버스인가. 왜 물감인가. 왜 평면이어야 하는가. 왜 작품은 벽에 걸려야 하는가. 왜 관객은 작품 밖에 있어야 하는가. 왜 내가 반복하는 소재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서 새로운 작품 세계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