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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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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미클 (와인,미술,클래식을 즐기는모임)
    서울특별시 마포구

    Morning Gallery Boris 로댕은 1840년 파리의 비교적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4세 무렵부터 소묘와 미술을 공부했고, 장식예술가를 양성하던 프티 에콜(Petite École)에서 드로잉과 조형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로댕은 프랑스 최고의 미술교육기관이었던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 입학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오늘날 세계 조각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당시 최고의 미술학교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결국 정규 엘리트 미술교육의 길이 아니라 장식조각가의 작업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현장에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오랜 무명 시절을 견뎠습니다. 1877년 발표한 《청동시대 The Age of Bronze》는 너무나 생생한 인체 표현 때문에 실제 사람의 몸에서 직접 본을 뜬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논란은 역설적으로 로댕의 뛰어난 인체 표현 능력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80년 프랑스 정부가 《청동시대》를 구입하고, 계획 중이던 장식미술관의 출입문을 위한 《지옥의 문 The Gates of Hell》 제작을 의뢰하면서 그의 인생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때 로댕은 이미 마흔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로댕의 시대는 아주 젊은 나이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ㅡ 학력 • 프티 에콜에서 드로잉과 장식미술 수학 • 에콜 데 보자르 입학시험 세 차례 불합격 • 장식미술과 조각 작업 현장에서 오랜 실무 경험 • 해부학과 인체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연구 로댕의 이력은 예술교육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학교가 한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 번의 불합격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 로댕이 무엇을 했는가입니다. 그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ㅡ 수상 · 주요경력 • 1880년 프랑스 정부의 《지옥의 문》 제작 의뢰 • 1885년 칼레시의 《칼레의 시민》 제작 의뢰 • 1887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 • 1889년 클로드 모네와 공동전시 •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시기 대규모 개인전 개최 • 1916년 자신의 작품과 소장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여 로댕미술관 설립의 기반 마련 그가 생전에 국가에 작품과 소장품을 기증한 결과, 파리의 로댕미술관은 1919년 문을 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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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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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밀라

    미술학풍 로댕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네 가지를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 표면입니다. 로댕은 조각의 표면을 지나치게 매끄럽게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한 흔적 위로 빛과 그림자가 움직이면서 조각에 생명력을 만들어 냅니다. 둘째, 움직임입니다. 인체를 고정된 덩어리가 아니라 긴장하고 움직이는 존재로 바라보았습니다. 셋째, 감정입니다. 몸의 자세와 근육, 손과 얼굴을 통해 고통과 사랑, 욕망과 절망을 표현했습니다. 넷째, 파편과 재구성입니다. 후기로 갈수록 신체 일부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바라보거나 기존 작품을 확대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현대조각의 파편화와 재구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ㅡ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흥미롭게도 처음부터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원래 《지옥의 문》 상단에 배치되어 지옥을 내려다보며 사유하는 단테를 상징하는 ‘시인(The Poet)’으로 구상되었습니다. 이후 독립 작품으로 전시되고 확대되면서 특정 인물을 넘어 고뇌하고 사유하는 인간 자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옥의 문 The Gates of Hell》 1880년 국가 의뢰로 시작한 로댕의 평생 프로젝트입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출발했으며, 로댕은 이 작업을 위해 200개가 넘는 인물과 군상을 제작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대표작이 이 거대한 작업에서 독립되어 나왔습니다. 《칼레의 시민 The Burghers of Calais》 영웅을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적인 기념조각과 달리 죽음을 앞둔 시민들의 두려움과 고뇌를 각각 다른 몸짓으로 표현했습니다. 높은 영웅적 받침대가 아니라 관람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인간적인 고통을 경험하게 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공기념조각의 개념을 변화시킨 작품입니다. 《입맞춤 The Kiss》 사랑과 욕망을 육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 역시 《지옥의 문》에서 발전한 작품입니다. 《발자크 기념상 Monument to Balzac》 로댕은 발자크의 외모를 정확하게 재현하기보다 작가의 정신적 힘과 창조성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표현하려 했습니다. 당시에는 강한 논란과 거부를 불러왔지만 오늘날에는 현대 기념조각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ㅡ 주요평가 오귀스트 로댕은 흔히 근대조각의 완성자이자 현대조각의 문을 연 작가로 평가됩니다. 그의 혁신은 단순히 인체를 사실적으로 잘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조각에서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들었습니다. 표면을 남기고, 신체를 파편화하고, 같은 형상을 확대하고, 다른 형태와 다시 결합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심리와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ㅡ 특이사항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880년대 초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클로델은 이후 로댕의 작업실에서 활동하면서 중요한 조각가이자 협업자, 연인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예술적 교류와 사랑,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카미유 클로델 역시 단순히 ‘로댕의 연인’이 아니라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가진 중요한 근대 조각가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한 거장의 역사 뒤에 함께 작업했던 다른 예술가의 역할과 독립성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ㅡ 로댕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 AI는 완벽한 인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칭도 정확하고, 피부도 매끄럽고, 비례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로댕의 작품을 보면 답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반드시 예술의 목적은 아닙니다. 로댕의 조각이 살아 있는 이유는 표면에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누르고, 깎고, 붙이고, 다시 고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표면이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AI 시대에는 기술적 완성도가 점점 더 쉽게 얻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작가의 선택과 망설임, 실패와 수정, 손의 흔적이 새로운 가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로댕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살아 있게 만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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