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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Gallery Boris 페르메이르는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고 1632년 10월 31일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 레이니어 얀스존은 직물업과 여관업에 종사했고 미술품 거래도 했습니다. 따라서 어린 페르메이르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그림과 미술시장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정확히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653년에는 가톨릭 신자인 카타리나 볼네스(Catharina Bolnes)와 결혼했고 같은 해 델프트의 화가조합인 성 루가 길드(Guild of Saint Luke)의 장인 화가로 등록되었습니다. 이후 길드의 대표직을 여러 차례 맡을 만큼 지역 미술계에서 신뢰받는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페르메이르는 많은 작품을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의 진작으로 대체로 인정되는 작품은 약 34~36점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한 작품을 매우 천천히 그리고 치밀하게 완성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675년 그는 4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675년 12월 15일 매장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사망한 뒤 아내와 많은 자녀에게 경제적인 어려움과 빚이 남았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생전에는 델프트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사후 오랫동안 미술사의 중심에서 거의 잊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ㅡ학력 및 주요 이력 • 1653년 델프트 성 루가 길드 장인 화가 등록 • 성 루가 길드의 대표직을 여러 차례 역임 • 델프트를 중심으로 작품 제작 및 미술 거래 활동 • 19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재평가 페르메이르의 생애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에 대한 기록이 부족해도 작품 자체가 충분히 강하면 후대가 다시 그 사람을 찾아냅니다. ㅡ페르메이르 미술학풍 첫째, 빛입니다. 페르메이르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이 빛입니다. 그의 실내화에서는 주로 화면 왼쪽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옵니다. 빛은 단순히 사물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분위기와 시간을 만듭니다. 둘째, 색채입니다. 특히 청색과 황색의 조화가 뛰어납니다. 울트라마린을 비롯한 값비싼 안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깊고 맑은 색채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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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공간입니다. 탁자와 의자, 벽과 창문, 바닥의 타일이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화면은 조용하지만 구도는 매우 정교합니다. 넷째, 침묵입니다. 페르메이르의 인물들은 대부분 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거나, 우유를 따르거나,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러나 그 고요함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다섯째, 순간입니다. 그는 거대한 역사보다 한 인간의 짧은 순간을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이 3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ㅡ대표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약 1665 페르메이르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초상화라기보다 특정한 유형이나 표정을 연구한 트로니(tronie)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소녀가 몸을 돌려 관람자를 바라보는 아주 짧은 순간이 포착되어 있습니다. 검은 배경과 얼굴의 빛, 푸른색과 노란색의 머리 장식, 귀걸이의 반짝임이 극도로 절제된 화면 안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만들어 냅니다. 《우유 따르는 여인 The Milkmaid》, 약 1658~1660 한 여성이 우유를 따르는 아주 평범한 순간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과 벽의 질감, 빵과 그릇의 세밀한 표현을 통해 평범한 노동의 순간을 장엄할 정도로 집중해서 보여줍니다. 《델프트 풍경 View of Delft》, 약 1660~1661 페르메이르가 남긴 드문 도시 풍경화입니다.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물, 건축물의 관계를 통해 델프트의 모습을 고요하면서도 웅장하게 표현했습니다. 《회화의 기술 The Art of Painting》, 약 1666~1668 작업실에서 모델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단순한 작업실 풍경을 넘어 회화란 무엇인가, 화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 약 1657~1659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성의 조용한 순간을 담은 작품입니다. 후대에 덧칠되어 가려져 있던 벽면의 큐피드 그림이 복원 과정에서 다시 드러나면서 작품의 의미와 공간구성에 대한 해석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ㅡ주요평가 페르메이르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일상의 가치를 회화적으로 극대화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그리지 않아도 깊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평범한 사람, 평범한 방, 평범한 하루, 그리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평범한 빛. 그러나 그것을 누구보다 오래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풍속화이면서 동시에 빛과 색채, 공간에 대한 매우 정교한 연구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진이 발명되기 훨씬 이전에 마치 카메라가 순간을 포착한 듯한 화면을 만들어 냈다는 점 때문에 현대의 사진과 영화에서도 끊임없이 연구되는 작가입니다. ㅡ특이사항 페르메이르를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 가운데 하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입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작은 구멍이나 렌즈를 통해 외부 풍경을 어두운 공간 안에 투영하는 광학장치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페르메이르 작품에서 나타나는 초점 효과와 빛의 표현 때문에 그가 이러한 광학장치를 활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가능성과 사실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논쟁 자체가 오늘날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페르메이르가 새로운 광학기술을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예술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일까요? 도구가 빛을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보고,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화면으로 완성할 것인지는 결국 작가의 몫입니다. ㅡ 페르메이르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 오늘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장의 이미지를 봅니다. AI는 몇 초 만에 페르메이르처럼 빛이 들어오는 방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지가 많아질수록 저는 오히려 다른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보는 능력입니다. 페르메이르는 많은 것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수십 점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작품 안에서 빛과 색, 사람과 공간을 오래 관찰했습니다. AI 시대에는 빠르게 만드는 능력이 더 이상 인간만의 경쟁력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멈추는 능력, 관찰하는 능력, 선택하는 능력, 그리고 하나를 깊게 바라보는 능력일 것입니다. 페르메이르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이 보고 있습니까가 아니라, 하나를 얼마나 오래 바라보고 있습니까?”
작가를 베르메르라고 알고있다가 페르메이르라고하니 뭐가 잘못됐나 당황했네요^^;;;
그림을 여행에서 보았는데 정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