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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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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미클 (와인,미술,클래식을 즐기는모임)
    서울특별시 마포구

    Morning Gallery Boris 프리츠 타울로는 1847년 크리스티아니아, 오늘날 오슬로의 비교적 부유한 약사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흥미롭게도 처음부터 화가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약학을 공부해 1870년 약학시험을 마쳤지만 결국 자신이 원했던 미술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1870~1872년 코펜하겐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해양화가 카를 프레데리크 쇠렌센에게 배웠고, 이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노르웨이 풍경화의 거장 한스 구데(Hans Gude)에게 배웠습니다 1870년대 파리를 경험하면서 프랑스 사실주의와 야외회화의 새로운 흐름을 접했고, 1879년에는 친구 크리스티안 크로그와 함께 덴마크 스카겐에서도 작업했습니다. 1880년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는 기존의 어둡고 갈색조가 강했던 아카데미 회화와 다른 밝고 생생한 야외 풍경화를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강과 눈, 겨울 풍경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1892년에는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습니다. 파리뿐 아니라 몽트뢰유쉬르메르, 디에프 등 여러 지역에서 생활하며 강과 운하, 작은 도시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의 물에 대한 관심은 프랑스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1892~1893년에는 같은 장소에서 센강을 계절과 시간에 따라 반복해서 그렸고, 이 작품들은 1893년 파리의 전시에서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말년에 당뇨병을 앓으면서도 작업을 계속했고 1906년 네덜란드 볼렌담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ㅡ 학력 및 주요 이력 • 1862년 노르웨이 왕립 드로잉스쿨에서 미술 공부 시작 • 1870년 약학시험 통과 • 1870~1872년 코펜하겐 왕립미술아카데미 수학 • 해양화가 카를 프레데리크 쇠렌센에게 사사 •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한스 구데에게 수학 • 파리에서 프랑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미술 경험 • 1879년 스카겐에서 작업 • 1880년 노르웨이 귀국 후 자연주의 회화의 중심 작가로 활동 • 1882년 노르웨이 가을전시(Høstutstillingen) 창설에 중요한 역할 •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 • 1890년 파리의 새로운 살롱인 마르스 광장 살롱 창설에 참여 • 1892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국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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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밀라

    수상 · 주요경력 타울로는 생전에 국제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프랑스 미술계에서도 인정받았으며 유럽 여러 국가에서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예술가들이 보다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1882년 시작된 Høstutstillingen(가을전시)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887년에는 전문 미술가들의 조직 설립에도 참여했습니다. 1905년에는 노르웨이 성 올라브 훈장 2급 사령관(Commander, Second Class)으로 임명되는 등 여러 국제적·국가적 영예를 받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의 그림만 그린 화가가 아니라 동료와 후배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미술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 예술가였습니다. ㅡ 타울로의 미술학풍 첫째, 자연주의입니다. 타울로는 자연을 이상적으로 꾸미기보다 자신이 직접 관찰한 풍경을 그렸습니다. 그의 1880년대 작품은 노르웨이 자연주의 회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둘째, 야외제작입니다. 직접 자연으로 나가 빛과 계절의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색채에는 실내에서 만들어낸 풍경과 다른 생생함이 있습니다. 셋째, 물입니다. 타울로를 가장 타울로답게 만드는 대상입니다. 흐르는 강, 잔잔한 수면, 물속의 반사, 눈과 얼음 사이로 흐르는 물을 집요하게 탐구했습니다. 넷째, 눈과 겨울입니다. 흰색 하나로 눈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푸른빛, 회색, 갈색, 보랏빛, 주변 사물의 반사색을 이용하여 눈의 온도와 시간까지 표현했습니다. 다섯째, 색채입니다. 그는 사실적인 자연주의를 유지하면서도 색채를 풍부하게 사용했습니다. 당시의 갈색조 아카데미 회화와 비교하면 이러한 신선한 색채감각은 상당히 현대적이었습니다. ㅡ 대표작 《Winter at the Simoa River》, 1883 전후 타울로가 노르웨이 모둠(Modum)의 시모아강 주변에서 탐구했던 겨울과 흐르는 물의 관계를 대표하는 작품군입니다. 눈으로 뒤덮인 풍경 사이로 흐르는 어두운 물은 정지된 겨울 풍경 안에 강한 움직임을 만들어 냅니다. 타울로는 1883년 시모아강 주변에서 물의 흐름과 복잡한 반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Iskjøring》, 1884 얼어붙은 겨울 풍경과 인간의 일상을 함께 담은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Winter in Norway》, 1886 눈 덮인 노르웨이 풍경을 통해 타울로 특유의 겨울빛과 자연 관찰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Picquigny》, 1899 프랑스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강과 건축, 주변 풍경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Museum of Art 센강 연작, 1892~1893 파리에서 같은 시점의 센강을 여러 달에 걸쳐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같은 장소도 계절과 빛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ㅡ 주요평가 프리츠 타울로는 1880~1890년대 노르웨이를 대표했던 화가이며, 당시 유럽 미술계에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노르웨이 자연주의 발전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저는 타울로를 단순히 ‘겨울 풍경을 잘 그린 화가’라고 설명하면 그의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정말 뛰어났던 것은 움직이는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이었습니다. 특히 물은 형태가 없습니다. 계속 움직이고, 주변의 색을 받아들이고, 빛을 반사하면서 순간마다 달라집니다. 그 어려운 대상을 반복해서 그리면서 타울로는 결국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ㅡ특이사항 타울로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면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만 생각한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을 도왔고, 그 가운데에는 훗날 세계적인 화가가 된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도 있었습니다. 타울로는 일찍부터 뭉크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1885년 그의 첫 해외여행을 경제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한 예술가의 능력은 자신이 얼마나 성공했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눈 역시 예술가가 가진 중요한 능력입니다. 그리고 타울로는 작품뿐 아니라 예술가들의 권익과 전시제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동시에 예술가들이 살아갈 환경을 고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ㅡAI 시대, 이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 AI에게 겨울 강을 그려 달라고 하면 몇 초 만에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 줍니다. 눈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반사되는 빛도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인간 작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타울로의 작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보는 것입니다. 실제 물은 매 순간 달라집니다. 오늘의 강과 내일의 강이 다르고, 아침의 눈과 오후의 눈이 다릅니다. 그 차이를 발견하려면 결국 관찰해야 합니다. AI는 수많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지만 내가 오늘 그 강 앞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까지 대신 결정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오히려 작가의 관찰력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빠르게 만드는 능력보다 오래 바라보는 능력,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 그리고 그 차이를 자신의 언어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타울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당신은 새로운 대상을 찾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보고 있는 대상을 충분히 오래 바라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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