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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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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ning Gallery Boris 소피 토이버아르프는 1889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부터 순수미술보다 응용미술과 공예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습니다. 1914년 취리히에 정착한 뒤 표현무용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915년 장 아르프(한스 아르프)를 만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중립국이었던 취리히에는 전쟁을 피해 유럽 각지에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들었고, 이 환경에서 다다가 탄생합니다. 토이버아르프 역시 취리히 다다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춤을 추고, 가면과 의상을 만들고, 추상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토이버아르프에게 특히 중요한 점은 다다와 공예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직물의 격자 구조가 회화의 기하학으로 이어졌고, 무용에서 경험한 신체의 리듬은 추상화의 움직임으로 이어졌습니다. Kunstmuseum Basel 역시 그녀의 작품에서 취리히 다다 시절의 춤과 균형·불균형의 감각이 이후 추상구성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ㅡ 학력 토이버아르프는 스위스 장크트갈렌의 응용미술학교에서 섬유디자인을 공부했고, 이후 독일 뮌헨의 데브시츠 학교(Debschitz School)에서 직물과 목공예를 비롯한 응용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학력은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녀에게 공예는 회화보다 낮은 단계의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직물을 짜는 행위에서 반복을 배웠고, 자수에서 점과 선을 배웠으며, 목공에서 구조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추상회화에 가져왔습니다. Kunstmuseum Basel은 그녀의 공예교육과 전위예술 활동이 결합되어 ‘살아 있는, 적용되는 추상’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합니다. 저는 이것이 토이버아르프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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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밀라

    수상 · 주요경력 1916년부터 1929년까지 취리히 응용미술학교에서 섬유디자인을 가르쳤습니다. 동시에 취리히 다다 활동에 참여하면서 예술가·무용가·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1918년에는 카를로 고치의 희곡 《King Stag》을 위한 마리오네트를 제작했습니다. 이 인형들은 기하학적 형태와 관절구조를 통해 인간의 움직임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 대표작입니다. 1920년 전후에는 유명한 《Dada Head》를 제작했습니다. Museum of Modern Art는 이 작품을 조각·마네킹·가면·놀이도구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경계적 작품으로 설명하며, 바로 그 분류 불가능성이 토이버아르프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평가합니다. 192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대규모 문화공간 《Aubette》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파리로 옮겨 추상미술 활동을 이어갔고, 1937년 바젤에서 열린 중요한 구성주의 전시에도 다수의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ㅡ 토이버아르프의 작품이해 하기 첫째, 기하학입니다. 사각형, 원, 직선, 격자가 반복됩니다. 하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기하학만은 아닙니다. 형태가 움직이고 춤추는 듯한 리듬을 가집니다. 둘째, 반복입니다. 직물에서 출발한 반복구조가 회화에서도 계속 나타납니다. 하지만 같은 형태를 기계적으로 복제하지 않고 크기와 색, 위치를 조금씩 변화시킵니다. 셋째, 균형과 불균형입니다. 형태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지 않습니다. 한쪽으로 기울거나 이동하면서 화면에 긴장감이 생깁니다. 이 감각에는 무용 경험도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넷째, 장르의 통합입니다. 회화의 색이 직물로 이동하고, 직물의 패턴이 가구로 이동하며, 기하학적 형태가 인형과 건축공간으로 확장됩니다. 다섯째, 생활과 예술의 통합입니다. 그녀에게 추상은 벽에 걸린 그림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쿠션, 탁자, 방, 건물, 의상까지 추상의 장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ㅡ대표작 · 주요평가 《Dada Head》, 1920 나무를 깎아 만든 두상에 기하학적인 색면을 그렸습니다.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면서도 마네킹이고, 가면이면서 동시에 추상조각입니다. MoMA는 바로 이러한 분류 불가능성이 다다의 기존 질서에 대한 질문과 토이버아르프의 경계를 넘는 작업방식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합니다. 《Vertical-Horizontal Composition》 계열 수직과 수평의 직선, 사각형과 색면을 이용해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작품이 당시 회화와 직물디자인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1910년대에 이러한 기하학적 추상을 직물과 회화에서 동시에 실험했다는 것은 상당히 선구적인 일이었습니다. 《Équilibre》, 1934 기하학적 형태가 화면 안에서 서로 균형을 잡으면서도 정지하지 않고 움직이는 듯한 리듬을 만듭니다. 현재 Kunstmuseum Basel의 고전적 현대미술 컬렉션에서도 주요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Aubette》 프로젝트 1920년대 후반 스트라스부르의 복합문화공간을 장 아르프, 테오 판 두스부르흐와 함께 디자인했습니다. 벽화 하나를 제작한 것이 아닙니다. 벽, 천장, 가구, 색, 동선까지 공간 전체를 하나의 추상구성으로 만들었습니다. 회화가 캔버스에서 빠져나와 사람이 실제로 걸어 다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ㅡ 주요평가 소피 토이버아르프의 미술사적 중요성은 단순히 ‘여성 다다 작가’였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20세기 초부터 예술과 공예, 디자인의 위계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회화는 고급예술이고 직물이나 가구는 생활공예라는 구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공예가,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로 보이지만 전체를 보면 전혀 다른 것이 보입니다. 모든 장르를 하나의 조형언어로 통합한 작가입니다. Kunstmuseum Basel은 그녀가 직물·쿠션·식탁보·비즈작업·인형극·의상·벽화·가구·건축·그래픽디자인·회화·드로잉·조각·부조까지 거의 모든 생활 영역을 추상으로 확장했다고 평가합니다. ㅡ 특이사항 토이버아르프의 얼굴은 오랫동안 스위스 50프랑 지폐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만큼 스위스에서는 상징적인 예술가였지만 국제미술사에서는 오랫동안 남편 장 아르프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술사 연구는 이를 크게 수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1~2022년 바젤·런던·뉴욕으로 이어진 대규모 회고전은 그녀를 독립적인 작가이자 20세기 추상의 핵심 선구자로 재평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생은 매우 갑작스럽게 끝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피신한 뒤, 1943년 취리히에서 난로 사고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53세에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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