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서 더 구경할 수 있어요
앱에서 볼까요?
앱에서 더 구경할 수 있어요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비추면다운로드 페이지로 연결돼요

창경기담 후기,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은 조선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부자(父子) 갈등이자 왕실 참사로 꼽힙니다. 1. 기대와 어긋난 성격 차이 영조는 학문에 철저하고 엄격한 완벽주의 성향의 군주였던 반면, 사도세자는 예술, 무예, 자유로운 활동에 재능과 흥미를 보였습니다. 영조는 세자를 끊임없이 훈육하고 다그쳤고, 이는 세자에게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증(우울증 및 광증)으로 이어졌습니다. 2.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비극 (임오년의 화변) 세자의 정신적 질환이 악화되면서 궁궐 내에서 돌발 행동과 비행이 잦아졌고, 결국 영조를 두려워한 대립 세력(나경언의 고변 등)과 영조의 불신이 겹치면서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결국 1762년(임오년), 영조는 세자의 비행을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세자에게 스스로 뒤주에 들어가도록 명하였고, 사도세자는 8일 만에 굶주림과 질식으로 갇힌 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3. 역사적 평가와 여운 영조는 아들의 죽음 뒤에 슬픔과 미안함을 담아 '사도(思悼: 슬퍼하며 그리워한다)'라는 시호를 내렸으나, 왕실의 안정과 정통성을 위해 세자의 존재를 엄격히 감추려 했습니다. 이후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비극적 기억을 가슴에 품고 왕위에 올라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얘기를 담고 있는 궁 창*경*궁이였답니다! 26년 10월의 마지막밤은 이렇게..








댓글 10
(사도세자의 경우 정쟁에 휘말린 것도 있지만) 건강한 아버지/부모와 자녀의 관계란 현대에도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요즘 아빠들은 엄청 다정하고 가정적이긴 하지만요.^^ 역사의 비극 앞에 다시 한번 고개숙이게 됩니다.
어제의 추억을 멋있게 정리해주셨네요 덕분에 사진 하나 저장 해갑니다
캔디님~~ 깔끔한정리~ 너무좋아요^^~~
캔디님의 멋진 후기 감사드려요~
캔디님, 만나서 반가웠고 올려주신 글 감사합니다
좋은풍경과 후기 잘보고갑니다~ 굿~
문성전 너른 마당에 뒤주가 놓여있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뜨거운 여름의 더위와 갈증에 고통받았을 사도세자를 늘 생각했지만 해지고 어두운 적막속에 있을 뒤주는 그려보지 못했죠.. 부자간의 갈등에 뒤주에 들어가기 전 < 아버님. 살려주시옵소서> 호소하고, 혜경궁과 어린 세손이 눈물로 남편과 아비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 그들의 울부짖음이 한 줌 바람에 창경궁 문성전 앞을 휘감는 것 같아 잠시 어찔했습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